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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3. 감정수업, 못다 한 이야기 -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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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3. 감정수업, 못다 한 이야기 - 강신주

"각 사물이 자신의 존재 안에서 지속하고자 노력하는 코나투스는 그 사물의 현실적 본질일 뿐이다." 인간의 코나투스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힘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보존할 수는 없는 유한자다. 인간은 다른 것을 먹어야 하고, 다른 것의 도움을 받아야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코나투스를 보존하기 위해서 타자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인간의 코나투스 =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힘.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혼자서 보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나도 그렇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기를 싫어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은 진행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타자와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고 함꼐 지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단지 사람들의 기분에 들기 위한 이유에서만 어떤 것을 행하거나 피하려는 노력, 이런 노력을 명에욕(ambitio)이라고 말한다.

 진심으로 행하는 것이 아닌 기분에 들기 위한 행위. 고과 시즌이 지났다. 할 일 없는데 남아있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업무능력과 업무량과 관계없이 고과가 주어진다. 이러한 노력을 명예욕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만나 과거보다 더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는 기쁨을 느낄 때, 우리는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답변 중 하나이지 않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죽이는 기술을 얻었다는 것 아닐까요? 매사에 일희일비하면 너무나 피곤해지는 것, 혹은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불이익을 받기 쉬운 것이 사회생활이자 가정생활이니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어른도 솔직할 수 있고 화낼 수 있는데, 참아야하니까 점점 아파하는게 아닐까.


다른 세계와 부딪히고 나서야 메리는 지금껏 자신이 가꾸어 온 삶이 공고하기는커녕 종이처럼 얇은 토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지금까지 아니 몇 년 전까지 치열하게 아니 열정적으로 살아왔다. 하고싶은 것도 있었고 관심있던 것도 있었고 실행했던 모든 부분에서 최고가 되었었다. 하지만 끝인 줄 알았던 세상에 나와보니 내가 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 


'훌륭한' 국립학교 교육을 받았고 문화인으로서 극히 안락한 생활을 부끄럽지 않게 향유해 왔으며 저속한 소설책만을 읽은 덕택에 알아야 할 것은 전부 알고 있었던 서른 살 노처녀 메리, 그녀가 지금 완전히 균형을 잃어버리고 휘청거렸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나도 없었기에, 남 얘기하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그녀가 결혼을 해야만 된다고 말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마구 휘청거렸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그대로 이야기 한다. 내가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달만 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나만의 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누구나 겪는 인생의 좌절 앞에서 도피가 아닌 당당한 대면을 선택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용기였습니다. 우리도 늦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좌절 앞에서 도피가 아닌 당당한 대면을 선택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용기. 일기를 쓰자.


어쨋든 두려움이 우리의 현재를 좀먹는 감정인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픈 기억은 우리를 과거로 보내고, 지나친 염려는 우리를 미래로 던져 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하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현재의 삶을 향유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벼움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가진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가진 것, 즉 건강, 젊음, 직장, 애인 들은 모두 항상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혹은 ㅇ너제든지 버릴수 있다고 생각하느 것이 좋다.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잠시 내곁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니 건강이니 모두 어느 사이엔가 떠날 걸 염두에 둔다면, 젊었을 때 그리고 건강할 때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해고되든 내가 떠나든 간에 지금 회사에 영원히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인식하나면, 직장 생활을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무것이 나와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돌아간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과 누리고 있는 것들은 잠시 스쳐지나갈 뿐.


내가 순수하게 추구하는 가치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돈'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진심으로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싶어하는지 아는 사람들이 없다.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세상을 나아가기 위해서 돈을 먼저 찾기 때문이다.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필수적인 요소이다. 돈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오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내게 필연적인 기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게 사랑을 가져다주는 그 사람만이 나의 기쁨을 지속시켜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필연적인 기쁨이다. 반면 우연적인 기쁨에서 연유하는 끌림은 이와는 다르다. 반드시 그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가 가진 유머감각, 혹은 부유함 들이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가진 것이 나에게 매력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지금 나의 현재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내가 우울하면, 그녀의 유머감각은 분명 내게 기쁨을 줄 수 있다. 내가 가난하면, 그가 가진 돈이 곧 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반드시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이것이 우연적인 기쁨의 핵심적인 요소다.

 필연적인 기쁨은 그 사람만이 나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기쁨이다. 하지만 우연적인 기쁨은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기쁨을 나눠주고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필연적인 기쁨을 주는 사람일까. 우연적인 기쁨을 주는 사람일까.


"사랑으로 꽃필 수 없어 아련하기만 한 두근거림"이라고 정의한 '끌림'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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